* 이 글은 예민한 사람을 위한 뉴스레터,

<오두막 레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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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은 스스로에게 예의를 지키고 계신가요?

저의 예의 척도는 '스스로에게 얼마나 솔직한가'인데요. 이건 순전히 제가 스스로에게 거짓 최면을 많이 거는 사람이기 때문에 생긴 기준입니다. 내심 좋아도 별로라고 믿거나, 싫은데 괜찮다고 진심으로 믿은 일이 자주 있었으니까요. 사람은 불리한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라면 스스로를 아무렇지 않게 속이기 때문에, 나조차 모르는 거짓말을 인지하기까지 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마 당시 제 마음은 홍시처럼 연약했을 거예요. 그래서 뭐가 내 감정인지도 모르고, 거짓 믿음을 바라보면서 지낸 것 같습니다.

마음의 연약함은 '내 안의 내'가 작을 때 생긴다고 해요. 그리고 ‘나’의 최소 단위는 생각과 감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 표현'을 연습해야 자신감이 올라가고 안정감이 생긴다고요.

만일 마음에 스펙트럼이 있고, 스펙트럼 상에서 연약함에 발 걸치고 있다면. 밖에 나갔을 때 긴장도가 확 뛰며, 내향적이고 예기불안에 자주 시달리고 계시다면, 응급으로 벽에 대고 혼잣말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응급처치가 끝나면 글로 자기 표현을 해야 해요. 

무엇으로든 <나의 최소 단위>를 발산해야 세상에서 내가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예민인의 글쓰기는 생존 활동입니다.

그래야 마음도 생존하고 쓸 데 없는 사람 솎아낼 힘도 나고, 어둑한 인상도 슬슬 펴지거든요. 사소한 상황에서도, 큰 상황에서도 마음을 삼키고 견디는 게 편한 사람은 확실히 뭔가를 써야 해맑아집니다. (자기 소개 꾸벅)

물론 회복탄력성이 높고 마음이 건강하면 글 같은 건 안 써도 됩니다. 본래 글 같은 것은 궁지에 몰려야 써지니까요. 제게도 글을 안 써도 괜찮은 세상과 멘탈이 있었다면 참 좋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런 세상과 멘탈이 없으니, 다은이 써온 <나 관찰일지> 매뉴얼을 시작합니다.

* 본 매뉴얼은 이미 심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있거나, 일상생활이 어렵지 않은 독자님을 위한 글입니다. 일상에서 심적인 불편감을 자주 느끼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막막하게 느껴진다면 '심리 전문가 찾는 팁' 글을 참고해주세요. (링크)

<나 관찰일지> 매뉴얼

목표: 나를 1g 더 알아내기

1. 식물학자가 되어 나를 식물로 바라본다.

2. 관찰자 시점으로 내 몸(감각)과 마음(심상)을 살핀다.

3. <지금 내 식물은>으로 문장을 시작한다.

4. 식물에게 벌어진 일들을 적는다.

사소해도 적자. 식물일지는 원래 사소하다.

5. 변화가 없어도 쓴다.

식물의 변화와 성장은 원래 느리다.

개의치 말고, 그냥 식물학자의 본문을 다하자.

6. 나 식물이 언제 고통스럽고 기쁘고 슬프고 만족스러운지 관찰한다.

지금 당장 상황을 바꿀 수 없어도, 아는 것만으로 도움이 된다.

7. 식물 상태가 파악되면 땅을 만져보고, 해는 잘 들어오는지. 주변 식물들은 생기가 있는지, 아니면 기운 없는 식물한테 둘러싸여서 힘든 건지. 이 식물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의문을 갖고 타인처럼 관찰한다. 

그것이 멋진 학자의 덕목이니까.

예시 1

지금 내 식물은 언짢음.

분홍색 고무장갑은 도저히 못 쓰겠다. 부르딩딩한 분홍색이 싫어서 이사 오자마자 고무장갑만 따로 주문했다.

짙은 녹색인데 튼튼하고 괜찮다. 여섯개 사놔서 안심. 주방에 쨍한 색이 뜬금없이 있는 순간 모든 흥이 식고 의 욕도 사그라든다. 눈에 못 생긴 색이 들어오는 자체가 거슬리고 화난다. 시각적 미감에 예민한가... 사실 그냥 눈 뜨고 있는 것만 해도 정보가 많이 들어와서 피로하다. 나만 이래 또? 나만 피곤해? 하 

예시 2

지금 내 식물은 몸이 불편함.

버스 다리 접어 앉아야 하는 언덕배기… 자리가 싫다. 편평한 곳이 좋아. 왜냐면 쪼그려 앉는 느낌이어서 불편해! 그리고 창가자리가 좋다. 창가 자리 아니면 서서 갈래. 멀미 난다.

예시 3

지금 내 식물은 열등감을 느끼는 것 같다.

어디서나 잘하고 싶고 은근히 눈에 띄어서 슈퍼스타가 되고 싶은데, 실제로 그렇게 돼도 내 기대에 충족되지 못하면 속상하다고 함. 남들이 좋았다고 하면 나도 좋긴 한데, 그래도 실수에 예민해진다. 너무 잘하고 싶은 것 같다.

근데 웬만한 일은 보통은 하는 것 같다. 근데 생각해보면? 아니… 어떻게 사랑이 다 잘하냐고. 말도 안 되는 걸 바란다. 잘해야 하는 것만 좀 신경쓰면 되는데.

* 관찰일지를 쓰기로 했다면 위 매뉴얼대로 시작해보세요. 이 방식을 기반으로 서서히 나만의 관찰일지 방식을 만들어가면 됩니다.

* 다만 목적을 잊지 마세요. 관찰일지의 목적은 나를 1그람 더 알아내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삶을 조금씩 가꾸어나가는 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