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사주는 도대체 뭔가요?
사주는 내가 태어난 [하루의 날]입니다.
내가 태어난 그 날, 그 하루의 시간과 계절을
글자로 적은 것이 사주지요.
그리고 나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태어난 사람은
전 세계에 1만명이 훌쩍 넘습니다.
덕분에 사주를 바라보는 관점은
수십가지가 존재하지요.
어떤 역술가는 '특정 날' 태어난 사람에게
'팔자가 좋아 걱정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고
어떤 날 태어난 사람에게는
'팔자에 부대낌이 많아 늘 부딪히니,
성정을 눌러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역술가는
똑같은 날 태어난 이들의 삶을
늘어놓고 고민할 수도 있겠지요.
왜 이 사람은 힘들고, 왜 이 사람은 성공했는지.
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은 무엇이 똑같고,
무엇이 다른지를 관찰하고 실험하는 역술가도 있을 겁니다.
다은네 오두막은 후자의 태도로
사주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특정 사주를 나쁘다, 좋다 판별하는 것은
마치 삶에서 [A날은 무조건 좋은 날],
[C날은 무조건 나쁜 날]이라고 말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실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돕기위해
사주를 공부한다면 365일 중 무조건 나쁜 날이 있는지,
오로지 재앙만 존재하는 날이 존재하는지를 고민해봐야 합니다.
오두막에서는 내가 태어난 하루를
때에 맞지 않게 쓰는 것은 아닌지,
그 날 하루의 성정을 무시한 것은 아닌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여깁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사주에서는
내가 태어난 [하루]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저 그 날, 그 시간에서 비롯된 나의 성격을
살리지 못할 때 삶이 흔들린다는 것을 배웠지요.
결국 사람은 성격대로 살지 못할 때 빛을 잃습니다.
때문에 이곳에서는 사주를,
나의 역할과 방향성을 알려주는
[대본]으로 바라봅니다.
사주로는 사람들의 성격과, 그 성격에 맞는 각자의 역할을 읽을 수 있지요.
이 성격으로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때 가장 빛나는지, 어떤 역을 맡아야 사람들이 이 사람을 가장 존경하고 따를지를 말이지요.
이번 생에 장군의 역할을 해야 내 속이 시원하고, 장군으로서 이끌 때 사람들이 나를 따라준다면, 장군의 실력과 자질을 갖추면 됩니다.
왕자나 공주로 태어났다면 사람들을 나에게 충성하게 만들 매력을 연마하면 되지요.
사주는 내가 맡으면 좋은 역할이자 배역일 뿐, [나] 자체는 아닙니다. 많은 문제가 사주를 '나 자체'로 생각해서 벌어지니까요.
Q. 내가 아니라니, 이게 무슨 뜻이죠...?
사주는 내가 태어난 하루일 뿐입니다. 나의 객관적인 능력이나 외모, 내가 살면서 만들어온 가치관이나 심성을 설명하지 못하지요. 만일 사주가 한 사람의 능력과 외모, 가치관과 삶의 변곡선을 모두 설명한다면, 사주가 같은 이들은 비슷한 외모나 가치관, 고유성을 갖고 있어야 하니까요.
어떤 날 태어난 사람은 꼭 음악에 재능이 있어야 하고, 어떤 사주는 반드시 정치를 해야하고, 어떤 사주는 작가를 할 수밖에 없어야 합니다. 사주가 같으니 가치관도 같다면, 같은 사주를 가진 이들은 비슷하게 착하고 비슷하게 나빠야 하고, 살면서 만든 선행과 악행의 양도 비슷해야 합니다.
고전 이론대로 사주가 절대적인 길흉과 나의 운명을 알려주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면, 사주가 같은 사람은 모두 같은 시기에 잘되거나 같은 시기에 망하고, 한 날 한 시에 생을 마감해야겠지요.
현실의 사주는 이렇게 작동하지 않으니, 운명론 관점의 사주 이론은 이론으로 남습니다.
Q. 엥! 팔자가 같은데 왜 다르게 살죠?
타고난 조건이 랜덤이니까요.
우리는 같은 날, 같은 시간이라도 나의 국가/ 부모/ 유전자/ 외모/ 신체 조건/ 주변의 지지 여부까지도 천차만별인 환경에 [뿅] 태어납니다. 그냥 랜덤으로 태어났어요.
그리고 이 [랜덤]은 대부분의 불평등을 만듭니다.
외형이 아름답게 태어난 누구는 세상의 눈에 빨리 들어 연예인이 되고, 누가 봐도 노래 잘하는 유전자를 가진 누구도 일찍이 가수가 됩니다. 태어나보니 우연히 머리가 좋거나, 발굴하기 어려운 자질을 타고났어도 좋은 부모가 미리부터 관찰해준 덕에 적절한 지원을 받고 자란 사람도 있지요.
그러니 유전적, 환경적으로 좋은 조건을 가지면 세상의 눈에 쉽게 들고, 그 안에서 잘 살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Q. 만일 초기 조건이 나쁘면요? 망했나요?
맞아요, 초기 조건이 나쁘면 사주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태어나보니 전쟁터라면 사주가 뭐 중요하겠어요. 일단 생존부터 해야죠.
같은 날에도 어떤 이는 장애를 갖고 태어나고, 어떤 이는 퀴어로, 어떤 이는 여성으로 태어납니다. 그러니 사주만으로 이 사람이 능력이 좋은지, 좋은 곳에서 태어났는지, 성공했는지 아닌지, 어떤 지향성을 가졌는지를 조금도 알 수 없지요.
초기 조건 + 결핍 + 타고난 성격 = 존재
이렇게 랜덤으로 흩뿌려지는 각자의 [초기 조건]과 조건 탓에 생긴 [결핍], 마지막으로 [타고난 성격]이 존재를 구성합니다.
* 세상의 다양한 학문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이렇게 단순치 않지만, 사주에 관해서는 편의상 이 등식으로 표현했습니다.
Q. 아니, 그럼 사주는 어디 써먹어요?
사주는 [타고난 성격]을 알려줍니다.
만일 나와 똑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이 성공했다면, 나와 성격이 같은 사람이 성공했다는 뜻입니다. 단지 그는 어떻게든 성격대로 살 수 있는 환경으로 옮겨갔고, 그에 맞는 능력을 갖췄을 뿐이지요.
때문에 다은네 오두막은, 일단 내가 내 성격대로 살 수 있는 환경에 놓여야 사주가 제대로 작동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주를 알면 내 성격으로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언제 움직여야 할지를 가늠할 수 있어요. 나를 위한 [연극 대본]으로 여기면 이해가 쉽습니다.
제가 느끼는 사주는, 눈에 띄는 재능이나 끝내주게 좋은 환경을 갖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삶의 대본] 같습니다.
모쪼록 세상에서 해야하는 내 역할과 방향성, 나를 위해 쓰인 대본을 알고 싶다면 오두막을 두드려주세요. 독자님이 살면서 만들어온 고유성 기반으로 상담하고 있습니다.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선 나의 캐릭터를 충분히 이해하고 분석하고, 한 문장의 대사를 수백번 연습해야 하듯. 내 성격에 맞는 자질을 충분히 이해하고 연마해야, 세상에서 내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Q. 사주를 간단히 말하면... 뭔가요?
사주는 [내 전용 대본]이자, [내 전용 네비게이션]입니다.
사주는 내 환경을 대변하지도, 나의 결핍과 고유성을 알려주지도 못합니다. 그저 내가 타고난 성격을 알려주는 대본이고, 내가 맞이하면 좋을 길을 미리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이지요. 삶의 방향성 하나는 무척 잘 알려줍니다.
그래서 혹여라도 사주를 [나 자신]로 여기거나, 환경과 능력을 가꾸지 않아도 사주가 알아서 작동해서, 운명처럼 삶이 흘러간다고 믿고 싶은 경우에는 오두막의 이야기가 맞지 않을 거예요.
오두막에서는 사람 한 명 한 명의 고유한 자질을 어떻게 살려나가야 할지, 그 자질로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행복할지, 어떤 환경에 놓여야 삶이 나답고 원활히 굴러갈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점이 마음에 든다면 언제든 오두막을 두드려주세요.
사람에게는 각자의 고유성과 자유 의지가 있으니, 따르지 않는 것도 인간다운 일입니다. 대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무대를 벗어나도 괜찮습니다. 자연인이 되거나, 홀로 자급자족하며 살아간다면 사주도 자연히 작동을 멈출 거예요. 함께 어울리는 삶의 대본에서 빠져나온 셈이니까요.
다만 언제든 무대로 다시 돌아와 나의 대사를 펼칠 수도 있습니다. 혼자가 지겨워지면 무대로 돌아와서 다시 나의 배역으로 움직여도 되지요.
시간이 흘러서 내 실력을 갖고, 언젠가 내 배역의 대사와 동작을 소화할 수 있는 날이 오면, 그간 놓친 무대 배경과 세트장, 상대 배역도 함께 돌아올 거예요. 그리고 내가 수없이 연습했던 배역은 자연히 무대 위에서 환대받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때는 이미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법을 익힌 순간일 테니까요.
모쪼록 한 번 쯤 잘 해보고 싶다면, 사주 속 대본을 따라보세요. 나만의 튼튼한 배를 완성하는 일과,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배를 모는 일이 손해는 아닐 거예요.
* 실은 사주를 몰라도, 내 성격을 잘 이해하고 그에 맞는 일을 하면 자연히 삶이 매끄럽게 흘러갑니다. 몸과 마음이 시키는 일이 보통은 사주에 쓰인 일이니까요.
Q. 보통의 사주 이론은 어떤가요?
보통의 고전 사주는 [운명론]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어떤 시기에 어떤 일을 시작하고, 언제 결혼하고, 언제 죽는지 등은 인간의 유구한 관심사였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고전 이론을 실제로 적용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운명론이 맞다면 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은 모두 비슷한 직업을 가지고, 비슷한 행보를 보이며, 비슷한 시점에 생을 마감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똑같은 사주를 가지고도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처럼 초기 환경과 주변 사람의 영향에 따라 다른 삶을 사는 것이 현대에는 명확해졌지요.
한날 한시에 태어나더라도, 그래서 같은 사주를 갖고 있더라도 그 아이들은 모두 태어난 국가, 부모, 재능 등 초기 환경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태어나보니 누구는 무척 미남이고, 누구는 태어나 보니 전쟁터였고, 누구는 평안한 나라에서 부모님이 부자이고, 누구는 이도 저도 아닌 평범한 곳에서 성장하지요. 이렇게 각자의 복잡한 상황과 인간의 자유의지까지 얽히니, 대부분의 인생이 사주대로 흐르지 않는 것도 자연스런 일입니다.
때문에 오두막에서는 [정해진 미래를 본다]는 관점을 쓰지 않습니다. 운명적 관점의 사주가 의미를 잃은지 오래니까요. 미래를 보는 것은 점의 영역인 데다가, 모든 게 정해져 있다는 운명론적 관점은 사람을 현재에 머물게 만듭니다.
대신 각각의 사주 대본을 펼쳐놓고, 각자의 상황에 맞춰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합니다. 네비게이션을 보고 삶을 운전하듯 말이지요. 누구에게나 자기의 길과 자기만의 사람들, 자기만의 자질이 깃들어 있으니까요.
Q. 그럼 사주로 운명을 알 수 없나요? 언제 부자될지, 언제 성공할지 궁금해요.
당연히 사주에도 가장 빛나는 순간이 존재합니다. 소위 운이 좋다고 말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2~30년씩은 찾아오지요.
다만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소수를 제외하면 성공한 사람들은 의식했든 그렇지 않든 자신의 성격대로(사주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결국 사주대로 산다는 것은, 나 자신을 잘 안다는 뜻과 상통하지요.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철저하게 이해하고, 내가 나답게 존재할 수 있는 곳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빛으로 걸어갑니다.
사주 마다 각각의 사회적 역할이 있고, 사람은 사주 속 대본과 계절을 따라 살 때 세상과 쉽게 연결됩니다. 마치 봄에 씨를 뿌려야 마땅하고, 여름에는 노동해야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듯이요. 같은 노력을 들여도 나의 계절과 역할을 알면 삶이 훨씬 수월해진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
[ 오두막 작업실 ]
평생 가지고 살아갈
삶의 방향성을 엿보고 싶을 때
내 사주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싶을 때
나의 고유성을 기반으로,
나답게 살아가고 싶다면
해로운 미래를 엿보고,
더 나은 내일을 만들고 싶다면
마지막으로,
지기의 시절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사실 저는... 그동안 사주에 푹 빠져서,
사람의 존재 전부를 사주에 끼워넣곤 했습니다.
트위터나 수업, 상담에서는
그러지 않으려 노력했으니
표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혼자 있던 어떤 날에는 문득 문득,
'나는 한낱 인간이고, 이 세상 사람들도
사주 안에서 사는 기계일 뿐'이라는
생각이 스쳐가곤 했습니다.
자기 이론과 임상에 몰입해서,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에게
내 말이 맞다고 소리치는 사주쟁이는
꼭 이런 과정을 거쳤겠더군요.
일상에서 수시로 사주를 떠올리니,
어느 순간에는 사람의 존재를
무척 작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나도 세상도, 사건 사고도
별 거 아니라고 말이지요.
그때 안 것 같아요.
사주를 인생으로 여기거나
운명으로 바라보면
(해석도 무척 틀릴 뿐더러)
코앞의 순간에 무던해진다는 것을요.
그런 이유로 앞으로도 저는
현실과 사주의 균형을 맞추는 데
무척 애쓸 것 같습니다.
매일 사주를 볼 테니
평생의 과업이 되겠지요.
그래도 독자님은
저처럼 어리석은 시간을
짧게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사주와 점은 너무나 즐겁고
실제로 잘 맞고, 삶에도 도움이 되지만요,
실제 세상을 살아가는 스스로와
세상 속 진짜 사람들이
한낱 사주 글자보다 훨씬 크고
생생한 존재라는 사실 또한
잊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의 고유성을 멋있게 갈고 닦아서,
나다운 역할로 사람들과 연결되어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덧붙여 이왕 태어난 김에
마음껏 좋은 환경으로 옮겨가시기를,
그곳에서 나의 고유성을 갈고 닦아
선하게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다은과 오두막은 언제나
그 걸음을 마음을 다해 도울 테니까요.
다은 드림